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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종주
2005.11.30 12:00

7일째(1.20)

조회 수 2420 댓글 0
 귀곡산장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입니다. 자칫하면 재미난(?) 일지를 보시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실 뻔했습니다. 오늘 저와 다른 대장들과 몇몇의 아이들이 귀신에게 홀려 산에서 까마귀밥이 될 뻔했더랍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시죠?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고,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렵니다.

아침부터 길은 좋았습니다. 행군도 순조롭고, 미 개통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거리도 단축하고...... 순찰차가 뒤에서 에스코트도 해주는 등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자유 행군을 하면서, 기분은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무슨 놈의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하나, 둘 몰려들고...... '아무래도 조금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점심을 먹고, 다시 미 개통 고속도로로 왔습니다. 한창 공사중인 곳이지만, 콘크리트가 잘 깔려있고, 차도 다니지 않아서 걸어가기 그만 이었지요. 다시 시작된 자유 행군. 날이 조금 차고,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들은 좋다고 잘 걸어갔습니다. 부담 없이, 대장들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음대로 떠들면서 장난도 치면서 걸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걸어가기 싫은 녀석들도 있는 법. 집에 가고 싶다고 매달리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눈물과 때가 섞여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애원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애처롭습니까? 그러나 종주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고, 아이들이 모여서 어떻게 집으로 가겠습니까? 또, 중도에 포기를 해 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본 다면, 부모님들도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애원해도 할 수 없다며 그대로 걷도록 했지요.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녀석들 덕분에 먼저 간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마침내 대장 4명과 녀석들 3명만이 남아서 고독하게 걸어야 했습니다. 무전기 하나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가다가 마을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잘 찾아가서 산길에 들어섰습니다. 산길만 지나면 남는 것은 본 대와의 합류...... 산길은 아주 어둡고, 으스스한 것이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마침 무서움을 잘 타는 여자 대장이 있어서 놀려줄 생각으로 슬슬 귀신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가운데서 걷는 사람이 귀신에게 홀린다, 귀신은 자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잘 홀린다 등등..... 계속 귀신 이야기를 했지요. 여자 대장은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한참 그렇게 떠들다보니 길을 잃었습니다. 한참 걷고 나면 제자리. 그리고 아까는 없던 길이 생겨있고...... 졸려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불어 날이 추웠고, 추위에 잠이 싹 달아났던 것이지요. 정신을 차리려고 담배도 태우고, 노래도 불러보고...... 그러나 길은 계속 꼬이고, 한참 걸으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슬슬 불안해지고, 무전기도, 핸드폰도 먹통이고...... 손전등도 없이 달빛에만 의지해서 걷는 것도 어렵고, 배고프고, 다리도 아프고......그러나 종일 걸어도 길은 없고......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귀신에게 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생각 난 것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좋아한다.'는 말. 귀신이 좋아한다는 것은 홀린다는 이야기를...... 온몸이 얼었습니다. 저도 기가 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어째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없던 길이 생기고, 암만 걸어도 제자리고......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귀신에게 홀리면 그것은 죽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하고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아니 없는 길을 만들고, 논과 밭을 가로질러가면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길을 하나 발견하고 그 길을 죽 걸어나간 결과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길의 끝에 있는 것은 다 쓰러진 폐가. 여기 저기 퍼런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적막하고, 한기가 흘렀습니다. '젠장 여기는 흉가다. 이런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피곤하고, 자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대장들도,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자거나 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반대로 걷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또 다시 걸어가냐는 아이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이런 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조금 걸으니 멀리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탐험대 차량에서 나오는 불빛. 다행히 그 차와 합류해서 산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산을 빠져나간 길은 저희들이 걷기 시작한 장소에서 얼마 안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왜 그 길을 보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빠져 나오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우선 이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헤맸는데, 본 대와 합류하는 길은 가까웠습니다. 그 산길을 걸으면서 십 년은 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직도 등골이 서늘합니다. 7명이나 되는 사람이 길을 못 찾고 헤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한참 걸어도 제자리, 힘들게 길을 찾았더니 그 끝은 다 쓰러져 가는 폐가. 암만 생각해도 귀신에게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귀신 하나가 7명을 다 홀릴 수 있나요? 아니면 귀신도 일곱이었을까요? 그것은 모르겠지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다행히 살아있지만......만약 그 차를 보지 못했다면...... 혹시 부모님들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시겠지만...... 이것은 오늘 있었던 실화입니다. 95%는 진실이고, 나머지 5%만 약간 오바입니다.

어쨌건 대장들도 아이들도 무사히 돌아왔고, 내일은 내일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아마도 문경새재를 넘겠지요. 영남대로 종주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문경새재......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귀신에게 홀리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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