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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다. 한걸음씩 우리가 가까워진다.

by 구한별 posted Aug 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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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아, 아빠다.
오늘은 8월3일 수요일, 국토횡단 9일째다. 대장님이 전해주는 행군 소식과 너희 대원들이 올리는 글을 보니, 갈수록 걷는 거리가 늘어나고, 대원들도 힘들어 하고 지치는 것을 알겠구나.
울릉도를 다녀오고 대관령을 넘으면서 씩씩하던 대원들도 이제 너무 힘들어하는 게 역력하구나.
한별이가 보낸 엽서는 어제 받았다.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음을 알고 너무 반가웠다. 울릉도에서 쓴 것이니, 멀미로 고생하긴 했어도 아직 그다지 힘든 상태에서 쓴 것은 아니란 것을 알겠고, 목소리를 남겨주고 인터넷에 글을 쓴 것도 모두 울릉도에서 였어. 그 이후로 한별이 얼굴을 단체 사진에서 한번 찾아보긴 했지만 구체적 소식을 들을 수는 없구나. 대화에서 안흥쪽으로 오던 2일 대원들이 대부분 힘겨워 하던데 한별이는 어떤 지경인지 궁금하고 염려되는구나. 남들보다 체구도 작고 그래서 힘도 약하고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배낭은 무겁고 갈 길은 멀고...햇볕은 내리 쬐고,,,, 배낭을 맨 어깨와 등은 견딜만한지, 발바닥에 아마도 물집이 잡혔을텐데 잘 말려주고 있는지, 종아리와 장딴지는 알이 배겨 힘들텐데, 햇볕에 까맣게 탄 피부는 괜찮은지, 걱정이구나.
그래도 다행이고 안심인 것은 대장님들과 또 친구들과 함께 걷는다는 거야. 어려운 일도 함께 하다보면 이겨낼 수 있지. 더욱이 한별이는 힘은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정말 약한 것은 아니란 것이지. 한별이도 알겠지만 진짜 힘은 참아내고 견뎌내는 끈질긴 의지의 힘이란 것을. 한별이의 굳센 의지를 믿기 때문에 그래도 덜 걱정이 된다. 남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한별이라면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아빠는 생각해.
자기 몸집 만한 배낭을 맨 채 빗속에서 행군하고 또 뙤약볕 아래서 걷고, 잠은 텐트나 강당에서 자고, 씻지도 못한 채 물도 충분히 마시지 못하면서 걷다보면 오로지 힘들다는 생각만이 들고, 어서 빨리 이 행군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고픈 마음 뿐일 거야.
아빠도 이해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힘들고 견디기 힘든 일이 있구나 하는 것을 체험하는 게 이번 국토횡단 탐험의 진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힘든 과정에서 드는 모든 생각과 느낌, 그리고 경험이 한별이를 키우고 튼튼하게 만들거야. 어떤 것들의 소중함은 그 것이 당연한 것으로 주어졌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아. 지금 한별이가 간절하게 느끼는 것들은 원래 무척 소중한 것들이었단다.
이제껏 이번처럼 배가 고팠던 적도, 가족이 보고팠던 적도, 몸이 힘들고 아프지만 뭐라고 말할 데도 없고, 끝없이 힘들기만 한 적은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한별이는 힘든 일에 도전해서 고생끝에 뭔가를 느껴보고 성취하는 게 무엇보다 보람있는 일이란 것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아빠는 알고 있어. 이번 탐험도 그래서 잘 견디고 나중에는 견디는 것을 넘어 참 해볼 만한 것이었다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고 생각해.
한별이가 편지를 받아서 읽을 때쯤이면 국토횡단의 막바지에 이르러, 비교적 서울 가까이 오게 되었을 때일 거야. 많이 걷는다고 날마다의 행군이 익숙해지는 것도 아니라, 여전히 힘든 일일거야. 하지만 해낼 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한별아! 힘들지, 한별이가 돌아오면 아빠는 이제 한별이를 더욱 성숙한 소년으로 대하고, 아빠가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할께. 이번 국토횡단을 하면서 한별이는 힘든 경험 속에서 그만큼 자라났을 거라고 생각해.
힘들지만 점점 집이 가까워지고 있어. 엄마 아빠 한길이 모두 8월9일 경복궁에 도착할 한별을 맞으러 나갈거야. 시원한 음료수를 준비해서.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나의 짐을 짊어진 채 국토를 걸어걸어 횡단한 우리의 용감하고 굳센 아들, 구한별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2005년 8월3일 새벽 아빠가 한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