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단

0119-17 마음 속 깊은 곳에,

by 탐험 posted Jan 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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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뜻한 밤을 보냈습니다. 어제 밤 조금 늦게까지 잠들지 못 했던 우리들의 밤이 지나고 오늘 아침도 역시 밝은 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저희 대장님들은 언제나 그랬듯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아, 어두운 방 안을 더듬거리며 준비하는 이아침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어떠한 아침보다 마음 속 낮은 안개가 깔린 듯 고요했던 아침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기상 시간에 맞춰 벌떡 일어납니다. 평소에는 그리도 일어나기 힘들어 하더니 야속하게도 아이들은 집에 간다는 생각에 그저 들떠 있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뒷정리를 하고 세안을 마친 아이들 입가엔 싱글벙글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들이 먹는 마지막 식사시간, 어제 저녁, 생일 파티와 동시에 마지막 파티를 하며 두둑이 배를 채웠던 과자와 케이크 때문인지 아이들은 평소와는 다르게 밥을 그리 많이 먹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취사대장님께 대장님의 밥은 언제나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아이들의 대단한 식성 덕분에(?) 꽤 고생도 고민도 많았던 취사 대장님, 그래도 아이들이 언제나 밥을 맛있게 먹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 하셨습니다.

밥을 먹은 뒤 우리들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모였습니다. 서울까지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고 해단식을 하고나면 그리 여유 있는 시간을 갖지 못 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의 얼굴이, 오늘은 유난히도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총대장님이 대장님들의 마지막 인사를 하겠다고 말씀하시자 우리 아이들은 대장님들을 향해 집중 하였습니다. 언제나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 향해 말하고, 아이들을 향해 서 있던 대장님들은 아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니 괜스레 쑥스럽고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먼저 각 연대 대대장님들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대장님들은 아이들을 돌보며 항상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냈던 일들과 화냈던 일들에 대해 미안하다 전했습니다. 보낸 사랑 보다 보내지 못한 사랑이 미안하기만 하지만, 그 대답으로 웃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다시금 고마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서 배운 것들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조금 더 힘이 되고, 이겨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아이들을 향해 더욱 웃어보이던 대장님도 있고, 헤어짐의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이던 대장님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대대장님들의 인사가 끝나자 환호와 박수를 보냈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노력해준 대장님들에 대한 우리 아이들의 인사였습니다.

연대장님들이 인사가 끝나고 지원 대장님들이 인사했습니다. 아이들과 연대 대대장님들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일했던 대장님들도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함을 미안해했습니다. 추운 날 아이들의 동상방지와 행군으로 인한 증상들을 보살펴 주시느라 아이들에게 항상 인기 있고 간호천사였던 의료대장님, 밥과 간식으로 우리 아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취사대장님, 아이들의 예쁜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아주는 카메라 대장님과 영상 대장님, 누구보다 아이들을 위하면서도 악역을 맡아 해야 했던 부대장님들, 아이들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우리들의 총대장님까지. 아이들의 기억 속에 우리 대장님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추운 날씨와 힘든 행군에서도 잘 따라주어서 고맙고, 더 잘 챙겨줄 수 있었을 텐데 싶어 미안하고, 너희들이 웃어주어서 사랑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숙영지에서 나가면서 버스에 탈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과 수고했다고 악수하고, 안아주면서 나오려는 눈물을 참았습니다. 우리들이 여행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빨리도 흘렀습니다. 버스에 타려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였을지. 아마도 아이들도 저희 대장님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에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자는 낮잠이 얼마나 달콤할지, 아이들은 이미 집에 도착했을 꿈을 꾸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눈을 떴을 때 버스는 서울역 앞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가방을 내리고 다시 경복궁까지 걸을 준비를 합니다. 넓은 논과 하늘과 맞닿아 있던 산, 길게 놓여있던 길을 보던 아이들이 서울에 내리자 복잡하고 이상했나봅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사람들처럼 이리 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복잡한 도심을 우리들이 함께 걷기 위해선 최대한 뭉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서로 모여 걸었습니다. 추워도 힘들어도 걸었던 것처럼 마지막을 향해 걸었습니다. 자신 보다 큰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실 경복궁을 향해 갔습니다. 우리가 걷던 길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 해 주었었고, 우리가 경복궁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부모님들도 아이들을 향해 박수쳐 주었습니다.

반가운 마음과 고생했을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시는 부모님도 계시고 꽃을 들고 계시는 부모님들도 계셨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이들이 부모님을 보면 울어 버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오히려 부모님을 보고 더욱 씩씩한 모습으로, 의젓한 모습으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한 뼘 더 자라났구나.’ 느꼈습니다. 마냥 어린 아이들로 남을 줄 알았던 아이들이 함께 여행하는 동안 많이도 자랐습니다.    

16박 17일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가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가 함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함께였던 동안 보았고 들었고, 맛 볼 수 있던 것들을 마음 속 깊이 담아 보물 속의 상자처럼 이따금씩 꺼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작은 영웅들, 그 동안 수고 많았고,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일지 대장 김은진이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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