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아침..눈을 체 뜨기도 전에 하루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늘 나라와 히로시마 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발길을 빨리하였다. 수도였던 나라는 a710년 ∼784년까지 70여년동안 불교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다른곳보다 불교와 관한 사찰이나, 유적들이 많다. 또 나라는 푸른 자연에 둘러쎃여 있어 고즈적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나라역을 도착한 우리는 가방을 모아놓고 조용하고 아늑한 나라탐사에 나섰다. 처음으로 간 곳은 흥복사였다. 5층의 목조탑이 너무 거대해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면서 위풍 당당히 서있었다. 지진이 나는 일본에서 안쓰러지지 않고 몇 백년을 버틴 탑의 모습이 대단했다.
탑을 보고 사슴공원으로 들어섰다.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한 두 마리의 사슴들이 우리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다가온 사슴들은 주머니에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먹을것이 나오지 않자. 허벅지를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이동한 건너편에는 몇 백 마리의 사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을 만지고, 장난치며 자유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사슴들을 뒤로하고 이동한 곳은 동대사였다. 일본 최대의 청동 불상이 있는 동대사는 무시무시한 크기에 또 다시 한번 우리를 앞도 하였다. 부처님상을 돌아 뒤쪽으로 가니 기둥에 사람들이 둘러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보니. 기둥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있는데, 소원을 빌고 구멍을 통과하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서 구멍을 통과하였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구멍에 당황하였지만, 전원이 통과하였다. 과연 무슨 소원들을 빌었을까..?
동대사를 나와 계단을 올라가니 이월당이라는 곳이 나왔다. 한눈에 나라가 눈에들어오는 절결을 가지고 있는 이월당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활발한 우리들의 성격과는 잘∼맞지 않은 조용한 곳으로, 정숙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다녀야 하는 곳이다.
이월당에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한 뒤, 역사가 깊은 가스가타이샤신사에 들렸다. 절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신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젠 신사에 들어가면, 일본인들의 참배 모습을 따라해 보이는 여유도 생긴다.
신사를 내려와 역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의 휴식을 가진 뒤, 신간센을 타고, 히로시마로 향하였다.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히로시마역에 배낭을 놓고 히로시마 탐사에 나섰다. 히로시마탐사에는 조금 특별한 교통수단을 이동하였다. 평소 이용하던, JR지하철이 아닌, 전차였다. 처음타보는 전차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일까? 지하철과 quif 다를게 없다는걸 안 우리는 조금 실망이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을 원폭 돔이었다.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어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자리잡고 있는 원폭돔의 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원폭돔을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평화 기념관이었다. 2차세계대전 원폭 당시의 상황, 피해강도, 구호활동등,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곳이었다. 자유관람을 하였지만,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한 눈으로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공원안에는 어린이상이 있었는데,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3살아기의 소원은 천마리학을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것을 알고 천마리를 접는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목숨을 잃자, 일본시민들이 날을 지정하여, 학을 접어 보낸것을 전시해 놓은 유리관이있었다. 일본일을 넘어, 세계의 어린이들이 이 날에 종이학을 보내 온다고 한다.
어린이상을 뒤로 하고 간곳은 한국인 위령비였다. 원폭당시에 목숨을 잃은 2500여명의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위령비는 공원밖에 세워져있었으나, 1994년 일본민간단체의 노력으로 공원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끼리의 잠깐의 추모식을 가지기로해서 1분간의 묵념시간을 가졌다. 떠들던 친구들도, 장난많은 친구들도 위령비 앞에서는 순진하고, 얌점한 친구들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모습도 있었나? 하는 정도로 조용하였다.
히로시마에만 있을 수 없기에, 우린 다시 역으로 향하였다. 역에 도착하니, 6명씩 한
조가 되어 저녁을 자율 식사로 하였다. 말이 안 통하는데 살 수 있을까? 두려움 반, 떨리는 반이지만, 맛있게 먹고 다들 집합하였다. 히로시마에서 신간센을 타고, 교토로 향하였다. 오늘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앉자 마자, 다들 졸기에 바빴다.
교토에서 야간열차로 갈아타고 일본의 중심, 수도인 도쿄로 향하였다.
마음이 숙연해 지는 하루였다. 크고 웅장하지만, 조용한 나라.. 마음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히로시마까지.. 하루 종일 ‘정숙’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따라다닌것 같다. 몇 천년, 백년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어있는 문화재는 우리가 본 받을 만한 점이었다.
하루하루가 더해 질 수록, 볼거리도, 배울점도 많은 나라인것 같다.
나라역을 도착한 우리는 가방을 모아놓고 조용하고 아늑한 나라탐사에 나섰다. 처음으로 간 곳은 흥복사였다. 5층의 목조탑이 너무 거대해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면서 위풍 당당히 서있었다. 지진이 나는 일본에서 안쓰러지지 않고 몇 백년을 버틴 탑의 모습이 대단했다.
탑을 보고 사슴공원으로 들어섰다. 잠깐의 자유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한 두 마리의 사슴들이 우리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다가온 사슴들은 주머니에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먹을것이 나오지 않자. 허벅지를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이동한 건너편에는 몇 백 마리의 사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을 만지고, 장난치며 자유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사슴들을 뒤로하고 이동한 곳은 동대사였다. 일본 최대의 청동 불상이 있는 동대사는 무시무시한 크기에 또 다시 한번 우리를 앞도 하였다. 부처님상을 돌아 뒤쪽으로 가니 기둥에 사람들이 둘러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무엇인가 보니. 기둥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있는데, 소원을 빌고 구멍을 통과하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어서 구멍을 통과하였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구멍에 당황하였지만, 전원이 통과하였다. 과연 무슨 소원들을 빌었을까..?
동대사를 나와 계단을 올라가니 이월당이라는 곳이 나왔다. 한눈에 나라가 눈에들어오는 절결을 가지고 있는 이월당은 한 폭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활발한 우리들의 성격과는 잘∼맞지 않은 조용한 곳으로, 정숙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다녀야 하는 곳이다.
이월당에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한 뒤, 역사가 깊은 가스가타이샤신사에 들렸다. 절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신사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젠 신사에 들어가면, 일본인들의 참배 모습을 따라해 보이는 여유도 생긴다.
신사를 내려와 역에 도착한 우리는 조금의 휴식을 가진 뒤, 신간센을 타고, 히로시마로 향하였다. 우리나라의 서울역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히로시마역에 배낭을 놓고 히로시마 탐사에 나섰다. 히로시마탐사에는 조금 특별한 교통수단을 이동하였다. 평소 이용하던, JR지하철이 아닌, 전차였다. 처음타보는 전차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일까? 지하철과 quif 다를게 없다는걸 안 우리는 조금 실망이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이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을 원폭 돔이었다.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되어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황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자리잡고 있는 원폭돔의 모습은 쓸쓸해 보였다. 원폭돔을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평화 기념관이었다. 2차세계대전 원폭 당시의 상황, 피해강도, 구호활동등,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곳이었다. 자유관람을 하였지만,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한 눈으로 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공원안에는 어린이상이 있었는데,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3살아기의 소원은 천마리학을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것을 알고 천마리를 접는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목숨을 잃자, 일본시민들이 날을 지정하여, 학을 접어 보낸것을 전시해 놓은 유리관이있었다. 일본일을 넘어, 세계의 어린이들이 이 날에 종이학을 보내 온다고 한다.
어린이상을 뒤로 하고 간곳은 한국인 위령비였다. 원폭당시에 목숨을 잃은 2500여명의 한국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위령비는 공원밖에 세워져있었으나, 1994년 일본민간단체의 노력으로 공원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끼리의 잠깐의 추모식을 가지기로해서 1분간의 묵념시간을 가졌다. 떠들던 친구들도, 장난많은 친구들도 위령비 앞에서는 순진하고, 얌점한 친구들이 되었다. 우리는 이런 모습도 있었나? 하는 정도로 조용하였다.
히로시마에만 있을 수 없기에, 우린 다시 역으로 향하였다. 역에 도착하니, 6명씩 한
조가 되어 저녁을 자율 식사로 하였다. 말이 안 통하는데 살 수 있을까? 두려움 반, 떨리는 반이지만, 맛있게 먹고 다들 집합하였다. 히로시마에서 신간센을 타고, 교토로 향하였다. 오늘의 일정이 피곤했는지, 앉자 마자, 다들 졸기에 바빴다.
교토에서 야간열차로 갈아타고 일본의 중심, 수도인 도쿄로 향하였다.
마음이 숙연해 지는 하루였다. 크고 웅장하지만, 조용한 나라.. 마음한 구석이 쓸쓸해지는 히로시마까지.. 하루 종일 ‘정숙’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따라다닌것 같다. 몇 천년, 백년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존되어있는 문화재는 우리가 본 받을 만한 점이었다.
하루하루가 더해 질 수록, 볼거리도, 배울점도 많은 나라인것 같다.